여자향수/Mature

[여자향수]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 : 석양을 닮은 분위기 끝판왕

366일 2018. 1. 30. 18:19

향기나는 리뷰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 EDT

Hermès Eau des Merveilles

 

 

 

오랜만의 에르메스 향수 포스팅, 그 중에서 진짜 가장 많은 후기 요청을 받았던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를 들고 왔다. 너무 많은 독자님들이 실제 사용 피드백도 들려주셨고, 추억담도 많이 들려주셔서 개인적으로는 포스팅하기가 살짝 망설여졌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의 출시년도는 2004년이며, 당시에는 이것보다 켈리 깔레쉬 등의 조금 더 달콤하고 예쁜 향수가 인기가 많았었다. 그런데 요즘에 여성분들이 화사한 느낌은 담백하게 누르고, 대신 내츄럴한 느낌의 밸런스를 원하는 경우가 많던데, 이런 트렌드의 변화와 잘 맞물려서 뒤늦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향수 추천 리스트에도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향수이기도 하다.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의 향기는 어떨까?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의 향기


 

탑 노트 ㅣ 비터오렌지, 레몬

미들 노트 ㅣ 앰버, 핑크페퍼, 제비꽃, 향기나는 송진

베이스 노트 ㅣ 페루 발삼나무, 바닐라, 핑크페퍼, 오크모스, 시더우드, 베티버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

『TOP/MIDDLE NOTE』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의 첫 향기는 뭐랄까…. 비터오렌지의 부드러운 속살을 조심히 긁어서, 나무향기가 잔잔히 베어 있는 핸드크림에 첨가시킨 것 같은 향기 난다. 바로 이 핸드크림을 내 손에 듬뿍 바르고서- 사랑하는 사람과 손 깍지를 한참동안이나 끼고 있다가 조금씩 손에서 땀이 나려고 할 때쯤 깍지를 뺐을 때, 차가운 공기가 손을 식히면서 날 것 같은 부드럽고 우아한 비터오렌지오 앰버의 향취다. 그리고 이제 그 비터 오렌지의 핸드크림에 주황색의 노을진 석양이 천천히 지면서 조금씩 차분하게 내리 앉을 때, 뭔가 가슴 깊숙이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공허함, 우울함, 서늘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좀 멋진 것 같은 느낌(?)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어울린 멋진 향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제 그 손으로 에르메스 자수가 촘촘이 새겨진 갈색 머플러를 휘날리며 목에 둘렀을 때, 그 머플러에서 오는 그 특유의 우아한 향취에 취하는 것만 같은 느낌의 향기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자향수의 플로럴 스러움은 단 1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우아함이 가득하다.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

『MIDDLE/BASE NOTE』

 

시간이 지난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는 여전히 굉장히 담백하고 내츄럴한 향조로 진행이 된다. 우리가 흔히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예쁘게 화장한 것 같은 느낌의 플로럴 향조가 정말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민얼굴은 아니고, 자기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살린 메이크업을 한 느낌이라고 할까? 제비꽃의 부드러운 향기가 앰버 특유의 사근거리는 부드러움과 섞여서 마치 스카프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 같은, 뭔가 몽롱하고 꿈꾸는 것 같은 핸드 크림 질감으로 잔잔하게 퍼진다. 향기가 워낙 살내음 처럼 잔잔한 느낌의 우디 노트로 스며들기 때문에, 향기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

 

내가 그녀에게 이끌렸던 것은 단순한 미적 매력이었다기 보다는

다른 어떤 분위기 때문이었다

 

 

 

 

 

 

 

 

 

 

양들의 침묵’, ‘대부’, ‘밀리언 달러 베이비

명품 영화들이 가진 단순하고 묵직한 제목만 봐도 왠지 그 영화의 전체 스토리와 분위기를 연상하 수 있는 것 처럼, 사람의 이름도 마찬가지로 힘이 있는 것 같다.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

 

칠판에 몇번 적힌 이름만 봤을 뿐인데, 괜히 얼굴까지 익숙한 느낌이 들고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왠지 그 사람과 밥이라도 한 번 먹은 것처럼 성격마저 알 것 같은 사람. 나는 고개를 슬쩍 들어 대답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약간은 러프하고 감각적으로 내려 앉은 눈매와 어둡고 짙은 검정 머리칼을 찰랑거리는 한 여성이 보인다.

 

“1장 제목부터 읽어 보겠어요?”

 

 

석양이 지는 것 같은 짙은 파스텔톤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진 않고, 어딘가 모르게 가슴 한 켠이 숨숨 해지는 목소리다. 그녀는 혼자서 목소리를 흠흠다듬더니 이내 물 흐르듯 책을 읽어 갔다. 석양이 교실의 책상위에 길게 늘어지듯-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의 목소리도 늘어지게 공간을 채워갔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문맥까지 미리 소화한 후 꼭꼭 씹어서 우리에게 낭송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럴까? 같은 공간의 모든 사람이 그녀의 숨소리가 잠시 쉬었다 가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찰나, 교수님이 잘했어요, 거기까지라며 이 공간에 조심히 들어왔다. 그제서야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가 책에서 조용히 눈을 떼며 숨숨한 미소를 천천히 짓기 시작했고, 그때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세상에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 학기 강의…. $*#%@%%(*%@”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교수님의 강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전히 흐릿하게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알 수 없는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는 지금 이 기분을 온전히 더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이 분위기의 정체를 자세히 보고 싶어졌다.

 

호기심을 못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처럼, 나는 몰래 시선을 살짝 들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를 잠깐 훔쳐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

 

… 원치 않게 그녀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쳐버렸다. 마주한 두 눈 사이로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이 확대되어 간다. 단정한 미소를 뒤로하고 둥글게 곡선을 따라 미끄러지는 이목구비가 보인다. 아치형으로 곧게 뻗은 눈썹은 단정했지만, 왠지 어딘가 모르게 슬프게 와닿았다. 나는 살면서 그런 분위기를 어디서고 본 적이 없었다. 감히 손 끝으로도 만질 엄두가 안나는 세월이 오래된 미술작품을 보는 것만 같다.

 

 

 

결론

 


 

퍼퓸그라피에 추천글을 남겨주시는 여성독자님들의 스타일이 유독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간 멋스러운 느낌의 스타일에 가까운 향수인 것 같다. 소개팅 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 말고, 그냥 데일리 혹은 출퇴근 용으로 입는데 그 분위기와 아우라가 멋있는 성숙한 여성에게 날 법한 향기다.

 

만약 내가 여자라면, 내가 아는 지인 중 가장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언니가 뿌리고 다닐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친한 친구가 뿌리는 닿을 것 같은 향기가 아닌, 저 멀리서 한 발자국 닿지 않는 곳에서 멋진 언니가 사용하고 다니는 우아하고 풍성하게 꽉 차는 느낌의 향수. 뭐랄까... 저 언니가 하는 메이크업의 방식과 스타일은 나도 잘 따라입을 수 있지만, 왠지 내가 따라 입어서는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 특유의 분위기가 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

 

 

단종되지 않고 계속 자리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출시된 지가 조금 오래 됐으니 티나지 않은 멋스러움을 원한다면 1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에르메스 오드 메르베이 요약


 

[판매처/정가]

에르메스 매장 / 19만9천원

 

[연령대]

20대 중후반 무관

 

[성별, 여성적]

석양이 지는 분위기 / 단아함 / 고급스러움 

 

[계절]

, 가을, 겨울

 

[지속력]

★★★(3.0/5.0)

 

[비슷한 느낌의 향수]

에르메스 랑브르 드 메르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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