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Cashmere Mist Donna Karan for women)
감사의 말
이번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는 투덜이님이 예전에 보내주신 시향분 중 하나 입니다. 보내주신 향수로 쓴 포스팅이 9월 24일 이니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났네요. 마음속으로는 ‘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사정에 의해서 의도치 않게(?) 늦어진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쨌든 투덜이님이 보내주신 향수가 다 구하기 힘든 귀한 것들이라서, 덕분에 제 코가 호강하고 있네요. 현재 보내주신 모든 향수를 다 즐겨봤답니다. 감사합니다.
소개
<사진출처 : bonkersaboutperfume>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는 현재 한국에서 구하기가 꽤 힘든 향수다. 찾아보니까 현재 국내에선 에센스, 바디 미스트 용도로 많이 수입이 되는 것 같다. 4~5년 전만해도 판매하는 사이트가 몇 개 있었는데 요즘엔 왜 이렇게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을까? 물론 살 수 있었더라도 가격이 꽤 비쌌겠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미국사시는 분들은 구하기가 쉽다는 점?! 어쨌든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의 런칭년도는 2004년이며 컨셉은 Warm(따뜻함), Sensual(관능적인) 이다.
현재 구하기 힘들어진 캐시미어 미스트의 향기는 어떨까?
향기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 Perfume Pyramid |
탑 노트 : 베르가못 미들 노트 : 쟈스민, 릴리오브밸리(은방울꽃), 스웨이드 베이스 노트 : 머스크, 샌달우드, 앰버, 캐시미어 우드, 바닐라 |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을 뿌리면 크림처럼 부드러우면서 알싸하게 매운 향이 동시에 난다. 막 빨래해서 나온 세탁물이 생각나는데 하얀색 와이셔츠 같은 빠릿한 것이 아니라 숄, 머플러, 벨벳 같은 그런 부드러운 재질일 것 같다. 상당히 부들부들 거리기 때문에 '물 대신 우유를 넣고 빨래를 했나?'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그리고 아까 잠깐 언급했던 알싸하게 매운 향을 묘사하면 세탁이 끝난 옷감에 후추를 탁탁- 뿌린 것 같다. 좀 더 정확히는 맵다 라는 생각보다는 코를 찌르르 자극하는 정도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시향지에서는 상대적으로 청사과 향기가 조금 더 강하게 나지만 착향된 후에는 과일향기를 거의 느낄 수 없다.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의 탑 노트는 『부드러운 벨벳 + 우유로 빨래한 옷감 + 알싸함』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의 알싸한 향기는 스르르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 달달한 향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부드러워진다. 부드럽지만 전혀 끈적거리지 않는 달지 않은 생크림을 보는 것 같다.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를 빵에다가 발라 먹으면 ‘음 부드러워~’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 않을까? 그 정도로 크림처럼 혹은 우유처럼 부드러운 향기다. 그리고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 특유의 파우더리함이 세력을 넓히는데 이게 꽤 특이하다. 혹시 독자님들은 안방 출입이 자유로우신 편인가?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 안방은 무언가 성역 같은 존재였다. 덕분에 도둑고양이마냥 몰래 문을 열고 안방에 들어갔을때 어머니 화장대를 지나가면서 자상한듯한 화장품 향기, 파우더리함을 느꼈는데 그것과 조금 비슷하다. 그러니까 요즘 젊은 여성들의 화장품에서 느껴질 법한 파우더리함이 아니라, 어렸을적 추억속에 간직된 포근한 파우더리함이라고 말하면 적당할 것 같다. 얼핏 맡으면 아기들 샤워 후에 발라주는 분 냄새 같기도 한데, 천천히, 그리고 집중해서 향기를 느끼면 확실히 성숙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럴까? 향기가 굉장히, 정말로 야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부드럽고, 뽀송뽀송한 여성의 살결이 연상된다. 흠흠, 자 이제 고백타임인가...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여성분들은 인지하고 계실지 모르겠는데… 여자들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살결이 보통 남성들과 꽤 많이 다르다. 덕분에 악수를 할 때도, 볼을 만질 때도, 안을 때도 특유의 부드러움 때문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그러한 여성 살결 특유의 부드러움이 연상되는 것 같다. 덕분에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가 표현하는 관능미는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데 '보일듯 말듯' '벗을듯 말듯'이 바로 그것이다. 분명 따뜻해 보이는 무언가를 걸쳤는데 정말 그것만 걸친.... 혹은 여성이 남자의 큰 와이셔츠를 입었을때 팔도 길고, 전체적인 기장도 길어서 귀엽네 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정말 그것만 걸친... 그러한 관능미다.
이제서야 관능적인 이라는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의 탄생 컨셉이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의 미들 노트는 『파우더리함 + 달지 않은 생크림 + 부드러움 + 따뜻함』
시간이 더 지난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는 기존에 느껴졌던 세탁하고 나온 것 같은 깔끔한 느낌은 많이 약해지고, 그 빈 자리를 바닐라가 치고 올라온다. 알싸하게 매웠던 느낌도 자취를 감추고 우유의 온도는 조금 더 뜨거워 진다. 전체적으로 데운 우유처럼 변한다. 음, 그래서 그럴까 어떻게 보면 약간 올드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전체적인 향기의 틀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다만 바닐라 냄새가 나고 부드럽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을 연상하시면 곤란한게 자꾸 먹고 싶고, 식욕을 부르는 느낌은 아니다. ‘와 바닐라야!’ 라기 보다는 ‘바닐라 냄새가 나네~’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의 베이스 노트는 『바닐라 + 데운 우유 + 부드러움』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의 상황극은 이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세계지리 0점’
이라는 형편없는 점수를 받고 나서, 음악만 하던 내 평탄한 학창시절은 망하게 되었다. 음악 그것참 멋진거라며 응원해주시던 어머니는 어느새 목소리에 칼을 달고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과묵하기만 하시던 아버지도 ‘과외 한번 받아야 될 것 같은데’ 라고 말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 동안 공부로 압박을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부모님도, 0점 시험지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받아들이신 모양이다. 개인적으로는 0점 받기도 힘든 거라며! 전교에 나 혼자 뿐! 이라고 우기고 싶었지만… 그러다간 집에서 쫓겨날지도 몰라서 참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과외 선생님 언제 오시냐…”
세계지리를 가르쳐주실 과외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 이름이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 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젊은 여자선생님이라고 한다. 그때 ‘띵동-‘ 하는 인터폰 소리가 울렸고 수화기 뒤로 “안녕하세요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 입니다” 라는 단정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흘러나온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안정된 발성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이지 지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내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우선 편안하게 신은 운동화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그 위로 회색빛의 치마 레깅스가 보였다. 시선을 조금 더 올려보니 스웨이드 재질로 만들어진 딱 붙는 옷, 그리고 여성스럽지만 귀여운 인상의 얼굴이 보인다. 머리는 흑발인데 그냥 편하게 예쁜 모양으로 올려 묶었다. 이건 누가 봐도 과외를 온 게 아니라 동네 마실 나가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상하게 전체적인 라인이 너무 여성스럽다. 그리고 그 라인에서 은근한 섹시함이 자꾸 눈에 밟히는데 부끄러운 마음에 계속 보진 못했다. 어쨌든 자리에 앉은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 선생님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단아한 목소리로 질문해왔다.
“세계지리 0점 맞았다며?”
“아… 저 원래 공부 잘해요. 이번에 곡 작업 하는데 오랜만에 하늘에서 그분이 오셔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리고 또...”
장황하게 이어지는 내 대답을 듣는둥 마는둥, 얼굴을 가만히 살펴 보던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 선생님의 눈길이 묘하게 자상하다. 발랄한 얼굴에 저런 자상한 눈빛을 하니까 묘한 이질감이 든다. 발랄함과 자상함이 뒤얽힌...은은한 섹시함이라고 해야할까? 그렇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말은 한껏 몰입한 내 감정을 와장창 깨버렸다.
“니 얼굴에 공부는 아예 존재하질 않는데? 다행히 머리는 좋아 보인다만”
“선생님 초면에 너무하시네요. 제 별명이 걸어 다니는 상식사전이에요.”
내 대답이 귀여워 보였는지 선생님이 이번에는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는 몇 미터일까? 이건 상식인데”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가 과연 상식이란 범주에 포함되는걸까 라는 한심한 생각만 하며 대답을 못하고 있자 선생님이 갑자기 내 양손을 덥석 잡아서 올렸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거지? 라는 당황스러움 뒤로 부드럽게 느껴지는 손의 감촉이 순간적으로 선생님을 '여자'로 느끼게 했다.
“내가 왼손에 잡은게 뭐지?
“팔이요.”
“오른손에 잡은건?
“그것도 팔이요.”
“맞아, 그리고 니 손을 잡은건 내 팔이지?”
“네 그런데요?”
“연결시켜봐"
"팔...팔...내...팔...?" 이라며 더듬거리면서 겨우 단어를 완성시킨 내게,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 선생님이 단정하지만, 착착 감기는 목소리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8848M, 빙고~"
결론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향수다. 덕분에 호불호도 어느정도 갈리는 편일 것 같다. 무슨 소리냐면 향기가 전체적으로 크게 2가지 이미지로 나뉘기 때문이다.
1 .포근함, 따듯함, 뽀송뽀송 = 엄마, 갓난아이
2. 부드러움, 매끈함, 은근함 = 여성의 살결, 관능미
이러한 두 가지 느낌이 동시에 공존하기 때문에, 코가 어느 쪽에 더 반응을 하느냐에 따라서 다가오는 이미지가 확 달라져버린다. 전자는 '엄마가 쓰면 좋을 것 같아' 라고 말하게 될 것이고 후자는 '부드럽고 은은한 섹시함' 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적어놓고도 실제로 이게 가능할까 싶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 봤더니, 신기하게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조금씩 달랐으니 믿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추천 연령대를 적어드릴 수가 없다... 20대 중반이 넘어갔다면 개인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다양할 것 같다.
향의 지속력도 꽤 길고, 확산력도 좋은 편이니 조금씩 펌핑하면서 주위 반응을 살펴보시는게 바람직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도나카란 캐시미어 미스트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생크림으로 만든 비누를 사용해 세탁을 한 것 같은 개성있는 향수입니다. 게다가 부드러움을 넘어서 은근한 관능미까지 손을 뻗치는게 굉장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봄,여름에 사용하긴 힘들 것 같고 '바람이 찬데? 추워!' 라는 생각이 들때 사용하시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관능미와 자상함이 동시에 공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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