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치향수

[공용향수]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 솔직후기

366일 2013. 9. 28. 00:30

향수 :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Blenheim Bouquet Penhaligon`s)

 

소개


저번 펜할리곤스 앤디미온 포스팅에 이어서, 이번에 포스팅하는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는 1902년에 런칭이 된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향수다. 영국의 왕실에서도 사용한다고 하며, 이미 향수라기 보다는 어떤 역사가 되어 있지 않나 생각한다실제로 이 향수를 사용하거나, 했다는 사람들 리스트를 쭉 적어보면

 

영국의 윌리엄 왕자

존 갈리아노

기네스 펠트로

쥬드 로

리차드 기어

등등 많은 유명인사들이 있다고 한다. 사용하는 사람들의 명성과 이미지만으로도 뭔가 우아하고, 클래식하며, 권위적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시트러스 향수라고 하는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의 향기는 어떨까?

 

 

향기


탑 노트 : 라벤더아말피 레몬라임

베이스 노트 : 머스크파인블랙 페퍼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를 뿌리면 처음에는 톡 쏘는 레몬냄새가 난다. 농장에서 갓 출하된 싱싱하고 탱글탱글한 레몬이 생각난다. 게다가 레몬 특유의 신 맛도 그대로 가지고 있. 혀 뒤쪽이 찌잉- 하고 울릴 정도의 신 느낌이라고 할까? 게다가 은근히 차갑고 시원한 느낌도 있어서, 냉장고에 막 꺼낸 레몬을 바로 씹으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달달한 향기도 느껴지기 시작하는데 썬키스트 레몬 맛 사탕의 느낌과 조금 비슷한 것 같다. 과일에서 날 법한 단 맛이라기 보다는 레몬즙을 아주 많이 넣은 사탕, 주스 등에서 날 것 같은 맛이다.

,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의 탑 노트를 요약하면 『레몬의 상큼함 + 설탕 뿌린 단맛 + 레몬의 신 맛 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탑 노트를 지나 완전한 베이스 노트에 이르기 까지 향의 변화는 굉장히 세밀하다. 우선 아까와 같이 레몬을 베이스로 놓은 향기는 여전한데, 그 느낌이 묘하게 다르다. 소나무의 솔 냄새라고 해야하나? 가시처럼 생긴 소나무 솔들 있지 않은가? 그 향기가 조금씩 난다. 물론, 레몬의 향기는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레몬열매에서 소나무의 솔이 한 두 개씩 자라나는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그런데 레몬 향과 이 솔 향이 묘하게 섞이지 않는다. 물과 기름을 화학용품을 넣어서 억지로 섞게 만드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 향기가 좋다, 나쁘다 라는 의미는 아니고 그냥 그러하다. 그리고 솔 향이 조금씩 화- 한 느낌으로 변한다. 붙이는 파스를 몸에 붙이면 코끝을 울리는 화- 한 느낌 있지 않은가? 그런 향기가 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화~ 한 느낌은 점점 더 심해지면서 흡사 파스냄새 비슷하게 변한다. 심지어 이 파스냄새가 레몬냄새랑 솔 향을 거의 먹어버리는 형국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솔 향기를 품은 파스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가만히 향기를 음미하다 보면,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를 만든 조향사가 소나무가 우거진 길, 들판 같은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는게 느껴지긴 했다. 그런데 한국 문화와 정서로는 솔 향기를 품은 파스냄새가 훨씬 더 와 닿는 것 같다. 울창한 살림보다는 화~ 한 느낌이 너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파스 특유의 매운 냄새가 점점 빠지면서 조금 더 풀 내음 비스무리한 느낌으로 향기가 남는다. 이것도 가만히 앉아서 조향사가 뭘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라고 생각하면 바람에 흩날리는 넓은 잔디, 초원 같은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 한국정서로 돌아보면 파스를 붙이고 오래 시간이 지나면 향이 흐릿해지지 않는가? 뭔가 좀 그러한 느낌이다.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의 베이스 노트를 요약하면 소나무의 솔 내음 + 파스 냄새』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의 상황극은 이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아들~ 등에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 파스 좀 붙여봐라

 

~”

 

나는 안방에서 화장대를 열고, 예쁘게 포장된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 파스를 꺼냈다. 전체적으로는 녹색빛이 감도는데 파스의 약 기운이 모여 있는 가운데 부분은 노란색이다. 아빠는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집에 들어오면 늘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를 찾으시곤 한다. 어린 나에게는 너무 매운 느낌의 파스인데, 아빠는 개운하다며 상당히 좋아하신다.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파스를 들고 아빠에게 다가간 후, 양 쪽에 붙은 스티커를 떼고 코팅된 비닐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그러자 싱싱한 오렌지 혹은 레몬 냄새가 확- 하고 풍겨 올라온다. 내가 즐겨 먹는 사탕에서도 이런 맛이 나던데

 

손에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가 달라 붙지 않게 끝 부분만 조심스럽게 잡고서, 아빠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얌전하게 붙였다. 그리고 등에 어설프게 붙어있는 파스를 손으로 슥슥 밀었다. 그러자 아빠가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아 시원하다~ 잘하네 우리 아들 라고 말했다. 히히너무 신났다.

 

솔직히 말해서 파스를 붙인 후의 순간부터는 정말 내가 싫어하는 냄새가 난다. 상당히 맵고, 쓴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나 같으면 아무리 아파도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를 사용할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아빠가 웃으면서 머리 쓰다듬어 주는게 좋아서 그냥 내가 맨날 붙인다. 그래서 나는 이 향기가 싫지만 그렇다고 너무 싫지도 않다. 만약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의 냄새가 좋아질까?

 


"..."

서툴지만 정직하게 눌러 쓴 일기를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리며 외마디 탄식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그때는 왜 아버지의 등이 넓다고만 생각했을까

그때는 왜 아버지가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의 향기를 좋아한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파스를 붙여줄 때 아버지는 왜 그토록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었나..

그리고 나는...

어째서 점점 작아지는 아버지의 등을 보지 못했나

 

보고싶습니다…”

 

 

결론

솔직하게 말하면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의 향기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밸런스가 좋다고 보기도 힘들고, 자연의 풍경을 잘 묘사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하지만 100년 전, 최초의 시트러스 향기를 만들기 위한 그 노력이 대단한 것 같다. 사실 뭐든지 '최초'라는 게 힘들지 않은가? 상대적으로 조향학이 많이 발달한 현대에 느끼기에는 분명 서툰감이 있지만 조향사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굉장히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은 향기라서, 개인 취향에 따라 사용하는게 좋을 것 같다.

연령대는 딱히 상관이 없어 보이며 지속력은 3~4시간 정도로 평범한 것 같다.

공용향수로 분류를 해놨지만, 조금 더 근접한 성별은 남성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펜할리곤스 블렌하임부케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굉장히 신선하고, 경쾌하단 느낌으로 표현을 해주신 분들도 있더라구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노쇠한 할아버지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왕년에는 정말 멋졌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한 인간 말이지요. 아, 향기가 올드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여러 향기가 섞일때의 느낌이 좀 그러했습니다. 만약 실사용이 목적이시라면 반드시! 시향을 해보시고, 자신의 취향에 맞을 때 구매하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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