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 겔랑 이딜 EDP(Idylle Guerlain for women)
소개
<사진출처 : http://www.productreview.com>
겔랑 이딜은 2011년도 겔랑 향수 중 판매 1등을 했다는 소리가 나돌 정도로 겔랑의 여러 향수 중 ‘이딜’ 라인은 가장 잘 나가는 것 중 하나다. 더 의미 있는 사실은 그 동안의 겔랑의 향수는 겔랑 가문사람들이 만들었는데 겔랑 이딜은 Thierry Wasser(티에리 바쎄)라는 외부(?) 조향사가 만들었다는 사실! 물론 지금은 겔랑의 코를 담당하고 계신 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장 폴 겔랑의 후계자 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겔랑 이딜의 런칭년도는 2009년 9월이며 기존 겔랑의 향수와 달리 티에리 바쎄만의 신세대적인 감각으로 사랑, 로맨틱을 잘 표현했다고 칭찬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장미 원료(불가리안 로즈)를 선택할때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그런 겔랑 이딜의 향기는 어떨까?
향기
겔랑 이딜 Perfume Pyramid |
탑 노트 : 프리지아, 팅크처 로즈(장미 추출물), 라즈베리(산딸기), 리치 미들 노트 : 쟈스민, 릴리오브밸리(은방울꽃), 피오니(작약), 릴리(백합), 라일락 베이스 노트 : 머스크, 파츌리 |
겔랑 이딜을 뿌리면 처음엔 살짝 달짝지근한 향기가 나는데 장미 + 딸기가 섞인 조합이다. 순수한 장미도, 혹은 딸기의 향도 아니고 그냥 꽃 향기에 딸기의 달짝지근함이 종이에 물 흡수되듯이 섞여있는 느낌? 뭔가 향이 막 발산되는 형체와 분위기가 종이가 물을 서서히 흡수하는 장면과 비슷한 것 같다. 향이 밖으로 뻗어나가지 않고 흡수되면서 흐드러지게 피는 모습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굉장히 여성스러운 꽃 과일 향기인데 색깔은 선분홍색이 생각난다. 과일은 사과와 딸기가 잘 섞인 느낌인데 그렇다고 또 마냥 달달하기만 한 것은 아니고 정체 모를 과일의 상큼함과 새큼함도 공존한다. 향기의 무게감은 차분하게 내리 앉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끈적끈적하지는 않다. 자칫하면 답답하다고 느낄 법한 향을 자몽 혹은 리치, 석류 과의 상큼함을 넣어서 답답하지 않게 잡아주고 있다. 만약 여러분들이 ‘향기가 좋아요?’ 라고 물어보신다면 ‘음… 예뻐요!’ 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막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넘치는 그런 종류의 향기는 아니고 자연물의 성분을 이것저것 예쁘게 추출해서 그걸로 좋은 향이 나는 인위적인 무언가를 만든 느낌? ‘이건 장미향이야’ 라고 말하고 싶지 ‘이건 장미야’ 라고 말하기는 조금 힘든 그런 종류의 향기다.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여성스러우면서 우아하고 확실히 ‘이성으로서의 여자’ 같은 느낌은 있는 것 같다.
겔랑 이딜의 탑 노트는 『딸기 + 장미 + 리치의 상큼함 + 부드러움 + 우아함』
탑 노트가 생각보다 오래 가기 때문에 시간 좀 지나야 미들 노트에 들어오는데 그때가 되면 처음에 조금 진하게 느껴졌던 장미향기가 많이 희미해진다. 다만 말 그대로 장미향기만 희미해진 것이지, 전체적인 꽃의 느낌은 오히려 다양해지는 것 같다. 이전까진 선분홍색의 이미지만 떠올랐는데 지금부터는 보라색, 하얀색의 꽃들이 다양하게 첨가된 느낌이라고 할까? 보통 다른 향수들은 처음에 상큼하다가 미들,베이스 노트가 되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밸런스를 보여주는데 겔랑 이딜은 오히려 미들에 들어오면서 향기가 조금 더 투명해지고 깨끗해진다. 물론 그래도 특유의 딸기와 리치가 섞인 과일의 달달함은 계속 존재하지만 말이다. 향의 미묘한 변화는 이와 같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아함, 부드러움, 여성스러움으로 통일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이 부드러운 여성스러움이 조금 특이한데, 약간 관능미가 섞여 있는 것 같다. 막 대놓고 유혹하는 모습이 아니라 '넌 이미 내게 반했어' 라면서 묘한 자신감에 차있는 여성이라고 할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꽃 향기 보다는 과일의 달큼함과 새큼함이 더 주축이 된다. 하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달지는 않으며 그냥 달큰하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겔랑 이딜의 미들 노트는 『장미 + 하얀 꽃 + 리치의 달달하고 새큼함 + 부드러움』
베이스 노트의 겔랑 이딜은 그렇게 큰 향의 변화가 없다. 미들 노트와 거의 흡사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 다만 기존의 ‘꽃’ 향기가 더 많이 사라지고 달달함이 남는다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처음에 느껴졌던 그 부드러운 장미의 향연은 어디갔는지, 말 그대로 ‘흔적’만 남기고 상당히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 '과일냄새가 나는건가요?' 라고 물어보시면 '스위트(sweet) 하네요' 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과일 종류의 새큼달콤이 주축이 되지만, 이상하게 '장미의 흔적'은 계속 남아 있다.
겔랑 이딜의 베이스 노트는 『장미의 흔적 + 과일의 스위트(sweet) + 부드러움』
겔랑 이딜의 상황극은 이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자기는 나 언제 처음 봤었어?”
겔랑 이딜, 사랑스럽게 웃으며 언제 처음 봤냐고 물어보는 내 와이프다. 그래...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을까? 사실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지 왜냐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정신 없었을 때니까
“음~ 내가 자기를 처음 본건…”
29살, 366그룹 면접 최종 단계 연수원에서였지
“드디어 마지막 발표구나, 이왕 이렇게 된거 최우수 조가 되겠어.”
나는 정말로 최우수 조가 되고 싶었다. 100명이 넘는 신입사원들 중 수 많은 조로 나뉘어진 경쟁자들 사이에서 내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늦은 나이에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그렇게 한창 의지에 불타고 있을 때 저 만치 앞에서 생수통을 조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있는 겔랑 이딜의 모습이 보였다.
“목부터 축이고 하세요~ 우리 다 같이 잘해봐요!”
그녀는 모든 게 나와 달랐다. 항상 웃는 얼굴, 생기가 가득한 에너지... 심지어 그녀는 예뻤으며 옷도 잘 입었다. 모든 연수원생들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단체티를 어찌 저렇게 멋지게 소화할 수 있을까? 가만 보면 15일이 넘는 연수기간 동안 그녀는 한번도 찡그리거나 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밤샘이 강요되는 강행군 속에서도 그녀는 한번도 여자의 환상을 깨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겔랑 이딜은 항상 예뻤고, 항상 준비되어 있었으며, 언제나 여자였다. 그래서 그럴까? 언제부터인지 겔랑 이딜은 남자 연수원생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녀가 되어 있었고 지금은 그런 그녀가 내 앞에 와서 물통을 건네 주고 있다.
“팀장 하느라 힘들죠?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우리 끝까지 잘해서 웃어봐요.”
“피식..."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는데 그녀는 한 번도 1등 하자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겔랑 이딜의 마무리는 언제나 ‘웃어보자’, ‘행복하자’, ‘힘내자’ 따위의 말이었다. 그런 나약하고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합격이나 할 수 있을런지 걱정이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응원을 받으면 마음이 풀리면서 희망찬 마음을 갖게 되곤 하는 것이다. 겔랑 이딜은 그런 매력이 있었다. 그런 그녀가 너무 귀엽고 예뻐 보여서 자동적으로 머리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쓰다듬어 버렸다. 그래… 말 그대로 ‘해버렸다’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던 겔랑 이딜은 이내 웃으면서 “이런 건 좋아하는 사람한테 하는 거에요!” 라며 차분하게 톡 쏘더니- 갑자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연다.
“난 좋아하니까 해야지”
순간 아무런 생각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 공간엔 단 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고 활짝 웃는 그녀의 눈동자에 역력하게 당황한 내 모습이 확대되서 비쳐 보인다. 태어나서 이렇게 강렬하게 누군가를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처음이었고, 쿵쾅대는 심장소리는 하늘 끝까지 울려 퍼질것만 같았다. 다행히 내 정신은 빠르게 돌아 왔지만 속과는 달리 어설픈 마음표현이 나가고 말았다.
“오빠한테 건방지게… 빨리 팀원들 한테 물이나 나눠 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슬그머니 미소 짓는 겔랑 이딜이, 나는 밉지 않았다. 그때 마침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이제부터 최종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팀은 순서가 꽤 뒤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팀들이 하는 것을 차분히 지켜볼 여유가 있었지만 확실히 100: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고 그럴수록 나는 더 긴장이 몰려왔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리 조 순서가 거의 다 되었을 때,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쓰러졌나봐!”
“뭐야 발작이야?”
"어떡해!"
호기심으로 다가갔던 그 자리에서 난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을 보고 말았는데 겔랑 이딜이 창백한 얼굴로 쓰러져 있었다. 동시에 내 머리는 순식간에 백지가 되어버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난 그녀를 안고 엉엉 울면서 연수원 밖을 뛰고 있었다. 입으로는 흐느낌이 터져 나오는 '제발, 제발'을 무한반복 하면서 말이다.
“휴... 그래서 우리 둘 다 탈락했지, 그게 내가 자기를 처음 본 순간이야”
잠시 멋쩍은 듯 미소를 짓던 겔랑 이딜이 갑자기 약간 토라진 모습으로 입을 연다.
“그래서 지금 그게 후회된다는 거야?!”
...여자들은 항상 이래 요지가 벗어난다니까
“아…아니 그게 아니고, 그래서 자기는 언제 나를 처음 봤는데?”
내 말을 듣고 잠시 추억에 잠긴 듯한 겔랑 이딜은 잠시 멈칫 거리더니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1차 면접을 보러 가는 길, 지하철 계단에서 할머니 짐을 들어 드리고 있는 자기를 봤어, 그때가 처음이야”
결론
겔랑 이딜의 향기는 분명히 특별하거나 개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향기로 분류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향기가 꽤 예쁘게 나왔다. 동양보단 서양에서 조금 더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한국의 정서로도 충분히 수용하고 소화할 수 있는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부드러운 향기 속 과일의 새큼함이 향을 계속 각인 시켜주는 효과가 있어서, 이걸 뿌리면 다른사람들에게도 어필하기 쉬울 것 같으며, 지속력은 보통이거나 약간 긴 편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서 딱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
어디 예쁘게 차려입고 나갈때 뿌리면 좋을 것 같으며, '이성으로서의 여자' 느낌을 어필하고 싶을때 뿌리면 좋을 것 같다.
샤넬 코코마드모아젤, 저스틴 비버 썸데이, 블루밍 부케 같은 향수를 좋아하셨던 분들은 꽤 마음에 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에르메스 운 자르뎅 수르닐, 아덴 5번가 같은 향수를 사용하셨던 분들은 부담스러워 할 것 같기도 하다.
향기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선분홍색이 생각나서 가을,겨울에 사용하는게 조금 더 바람직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겔랑 이딜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충분히 여성스럽고, 은근히 유혹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살짝 달달하긴 하지만 숨막히게 과하거나 파우더리하다고 말하긴 힘드네요. 평상시에 '여성여성'한 향수를 뿌리고 다니셨던 분들은 충분히 멋지게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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