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담은 리뷰
아닉구딸 로즈폼퐁
Annick Goutal Rose Pompon for women and men
이번엔 장미향수, 아닉구딸 로즈폼퐁을 들고 왔다. 개인적으로 별로 관심 없던 향수였는데, 3년 전에 아닉구딸에서 장미를 주제로 만든 ‘아닉구딸 스스와우자메’ 라는 향수를 맡고 엄청 충격에 빠진 적이 있어서… 그 이후로 뭔가 아닉구딸의 장미 향수는 좀 꺼려졌었다. 게다가 아닉구딸 로즈폼퐁의 바틀이랑 수색이 너무 예뻐서 마치 독버섯 쳐다보듯 더 의심을 하기도 했다. '저렇게 예쁜 향수가 향기까지 좋을리 없어!' 라고 말하면서
그러다가 2개월 전 우연히 마주친 이 녀석은, 내가 겁쟁이였구나 라는 사실을 환기시켜줬다. 난 겁쟁이었다...
참고로 남자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깔끔한 느낌의 향수다.
아닉구딸 로즈폼퐁의 향기는 어떨까?
아닉구딸 로즈폼퐁의 향기
탑 노트 ㅣ 핑크페퍼, 블랙커런트, 라즈베리
미들 노트 ㅣ 불가리안 로즈, 피오니, 타이프 로즈
베이스 노트 ㅣ 시더우드, 파츌리, 화이트머스크
아닉구딸 로즈폼퐁 TOP/MIDDLE NOTE
『블랙커런트와 녹색잎사귀가 짓이겨진 장미향기』
아닉구딸 로즈폼퐁의 첫 향기는 갓 익은 블랙커런트 몇 알을 손에 올리고, 그 위에 블랙커런트의 녹색 잎사귀를 포개서 손으로 꽉 짓이긴 듯한 향기가 난다. 무농약 과일에서 느껴질 법한 깔끔하고 담백한 블랙커런트 + 잎의 향기다. 동시에 마냥 프루티 계열로 빠지지 않고 생화를 닮은 장미도 올라오는데 이게 뭐랄까… 아까 블랙커런트를 쥐었던 손으로 장미 몇 송이를 따다가 꽉 쥐었을 때, 장미 잎에 블랙커런트와 잎사귀가 묻어나지 않겠는가? 바로 그 장미를 코에 가까이 가져다 댔을 때 날 것 같은 향기가 난다. 싱싱하고, 푸르고, 담백하고, 짓이겨진 느낌의 향기다. 아닉구딸 로즈폼퐁 이란 이름으로 ‘장미’를 대놓고 달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막 장미가 주인공은 아닌 재밌는 밸러스다.
아닉구딸 로즈폼퐁 MIDDLE/BASE NOTE
『드럼통 뒤, 그늘진 곳에서 열매가 핀 피오니와 장미』
시간이 지난 아닉구딸 로즈폼퐁은 뭐랄까… 좀 더 스파클링하게 변한다. 여기서 스파클링이란 단어가 애매하니까 조금 더 비유를 해보면, 녹색내음이 가득한 산 기슭의 어느 맥주 양조장이 있다고 치자. 그 옆에 멀찍한 곳에서 한때는 맥주를 담았던 지금은 텅 비어버린 낡은 드럼통이 있는데, 그 나무 드럼통 뒤쪽 그늘에서 몰래 자라다가 자기도 모르게 붉은 열매를 맺어 버린 장미 넝쿨 같은 향기가 난다. 낡은 나무 드럼통에서 나는 빛바랜 포근함과 함께. 시간이 더 지난 아닉구딸 로즈폼퐁은 여느 향수처럼 시그한 느낌의 파츌리+화이트머스크+시더우드 향기로 마무리가 된다.
아닉구딸 로즈폼퐁
뾰족한 가시는 없지만
완벽해서 다가가기 힘든 장미
내 옆의, 옆자리에 앉아서 곧은 자세로 노트를 뚫어져라 보는 여학생, 아닉구딸 로즈폼퐁
흑발이란 단어는 부족할 정도로 아주 새까만 생머리가 특징인데, 그녀를 보고 있자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서슬퍼런 가시 없는 장미-
가까이 가도 다칠 걱정은 없지만 왠지 나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붉은 장미. 그래서 그런가? 같은 교실의 모든 학생들은 암묵적으로 아닉구딸 로즈폼퐁 근처의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 놓는다. 그렇다고 그녀가 싸가지 없다거나 인상이 험상궃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중국 미인도에 나오는 것 같은 아주 예쁘고 깔끔한 얼굴이었는데
“쟤가 나보다 시험을 잘봤단 말이지….?”
공부도 잘해서 좀 재수없었다. 4년 내내 과 수석을 차지했던 나를 제치다니…! 그것도 타과생이 가장 어려워한다는 내 전공수업을 듣는 건데!
“라이벌로 인정하마”
그래서 이 교실에서 유일하게 나만, 아닉구딸 로즈폼퐁의 옆의, 옆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뒤에서 보면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절대고수의 기 싸움 같다고 하는데, 야 임마, 여긴 그래도 우리 영토잖아? 타과생에게 밀릴 순 없지. 하지만 내가 정말 못 견뎌 하는게 있었는데
“……”
나에 대한 아닉구딸 로즈폼퐁의 철저한 무관심이다. 지금도 내가 옆에서 이렇게 째려보는데 한 번을 안 쳐다본다. 아마도 그녀의 세계관에는 자기 앞에 노트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도대체 뭘, 저렇게 열심히 적고 보고 되뇌이는 걸까… 뭔가 나도 모르게 저 소중해 보이는 노트를 훔쳐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순간-!
스윽-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난생 처음으로 가까이서 마주본 그녀의 눈은…. 예상보다 훨씬 더 짙고 까맣고 예뻤다.
“……”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내가 먼저 시선을 피해버렸다. 저 눈을 그대로 보고있으려니… 뭔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람 눈을 보는데 이렇게 떨리다니… 쟤 뭐야? 생각보다 너무 놀라서 난 결국 수업에 하나도 집중하지 못했다. 그저 이 수업이 빨리 끝나길 바라며, 시계만 바라보다 수업종료 종이 울리자마자 부리나케 짐을 챙기고 도망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때 내 앞에 보이는 아닉구딸 로즈폼퐁의 빨간색 코트 밑자락-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가 나를 보고 있다. 다시 한번 턱- 하고 막히는 호흡. 뒤이어 온통 새하얘진 머릿속을 뚫고- 그녀의 하늘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이거 저번 수업 중요한 거 체크한 거예요… 아프다고 결석하셨길래….”
결론
트렌디하고 깔끔하게 잘 만든 것 같다. 너무 생화향기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장품 분 내음은 전혀 아니고 블랙커런트를 섞어서 중립을 잘 지켰다. 게다가 아닉구딸 특유의 순수한 예쁨도 섞여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시크함과 순수함의 조화라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향수를 많이 알고 계신 분들은 아마… 내 추측으론 딥디크 롬브로단로? 혹은 라리끄 아메시스트 정도를 연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까 향수 고수분들은 아닉구딸 로즈폼퐁을 맡으면서 ‘에이, 맡아본 거잖아’ 라며 무덤덤해 할 수도 있단 소리다. 왜냐면 그 계열에서 나온 후속작, 개정판의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장미향기를 처음 접하는 분들은, 아마 눈 동그랗게 뜨고 되게 충격 받지 않을까? 또 앞의 향수들 보다 더 깔끔하고 예쁜 느낌도 있으니까 이 정도면 선물용으로 좋고, 수집용으로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괜찮게 만들었다.
아닉구딸 로즈폼퐁 요약
[연령]
20대 초중반 – 무관
[성별, 여성적]
분위기 있음, 선이 얇음, 내성적
+스타일리시한 남성도 소화가능
[계절]
사계절
[지속력]
★★★☆
[질감]
블랙커런트와 잎의 싱싱한 내음을 담은 손으로
장미 꽃을 한번 쓱- 쓸어내렸을 때, 장미에 베어있는
깔끔한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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