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치향수

[니치/남성]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 : 밉지 않은 사람

366일 2018. 6. 12. 18:01

향기나는 리뷰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

Tom Ford Gray Vetiver

 

 

 

 

 

정말 오랜만의 톰포드 남자향수,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를 소개해드리게 되었다. 사실 톰포드 향수가 향수 초심자(?) 분들이 사용하기엔 약간 끈적거리거나, 섹시한 느낌이 강한 향수들이 많은 편인 것 같다. 그래서 3년전에 네롤리, 화이트 스웨이드 등등 부담없이 사용하기 좋은 향수를 권해드렸었는데…!

 

이번엔 더 부담없이, 멋지게 사용하기 좋은 향수니까 기대해주셔도 좋을 것 같다.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의 향기는 어떨까?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의 향기


단일노트 ㅣ 베티버, 오렌지 플라워, 자몽, 아로마틱 세이지, 오리스, 넛맥, 피멘토(피망), 앰버우드, 오크모스, 드라이 시트러스 어코드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 탑-미들 노트

『흙 먼지가 묻어있는 베티버와 굵직하게 썰어낸 레몬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의 첫 향기는 흙바람을 투둑투둑 맞고 있는 베티버를 재빨리 한움큼 뽑아서, 아직 흙먼지가 가득한 베티버에게 자몽, 레몬, 유자 등의 상큼달콤한 과일 에센스를 적셔주는 듯한 향기가 난다. 유자와 레몬의 굵직하고 존재감 있는 에센스 형태의 뭉툭한 향기가, 흙먼지가 잔뜩 묻은 베티버를 전체적으로 감싸고 도는 듯한 느낌의 거친 듯 세련된 향기다. 자근한 돌 알갱이들이 바람에 휘날리면서 베티버에 살짝 생채기를 내놓고 지나다니는 느낌의 질감의 베티버 향기다. 베티버 특유의 쿰쿰한 흙냄새는 굵게 썰어 놓은 레몬과 유자 열매 덕분인지 거의 나지 않고, 흙먼지 정도 같은 느낌의 산뜻함으로 번져간다. 굉장히 멋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거친 느낌이 있기도 하고, 뭔가 부드럽기도 하다.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 미들-베이스 노트

『모래폭풍을 비집고 나온 그레이Grey 베티버』

 

시간이 지난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는 조금 더 비누향 스러운 질감의 잘 정돈된 베티버 향기가 난다. 왜 베티버 앞에 그레이(GREY)라는 단어가 붙었는지 느낌이 대번에 온다고 할까? 원래 베티버가 되게 알싸하고 매캐한 느낌의 흙더미 뿌리 같은 향기가 있는데, 그 특유의 알싸함을 완전히 잡아버린 후- 아까 말한 모래 폭풍을 뚫고 나온 그 느낌? 청량한 하늘이 아닌 무언가 비가 금방이라도 내릴 것 같은 하늘의 선선함, 톤다운 된 느낌의 모던함을 갖고 있는 비누 잔향 같은 느낌의 베티버 향기다. 그래서 그런지 슈트 혹은 깔끔한 복장을 멋스럽게 입은 남자가 딱 떠오르는 남자향수임에도 불구하고, 그 멋스러움 때문에 여자가 써도 괜찮겠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

 

나를 세상 아쉽게 하는

잔잔한 고백 

 

 

 

 

 

 

이제 거의 헉다 왔다 헉난 괜찮은데 헉넌 괜찮아?”

 

실소가 터져 나오는 귀여운 허세였다. 항상 유쾌하고, 걱정거리 없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영원히 봄만 반복되는 세상에 사는 남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괜찮죠…!”

 

그런 나를 고맙게 보는 그 눈빛이, 나를 쑥스럽게 만드는 남자였다. 친구들이 이런 내 모습을 보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분명히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 앞에서만 느껴지는 이런 쑥스러움이 싫지 않았다.

 

저기 앞에 보이는 불빛, 보여? 저기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야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가 가리킨 곳에는 새까만 강이 흘렀다. 어두워진 밤 하늘 아래, 이곳이 도시임을 단박에 알게 해주는 화려한 불빛만이 반짝거리는 강. 커다란 강을 양 옆으로 끼고서 아직 도로가 정비되지 않은 무성의한 느낌의 흙 길이 펼쳐져 있었다. 강아지들이나 뛰어놀기 딱 좋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드는 흙 길

 

뭔가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 답네요

 

그 사람은 그저 세상 모던하게 웃어 보였다. 약간은 낯선 그 모습이 다시 나를 쑥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손가락만 자꾸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결심했다는 듯한 어조로 크게 말했다.

 

그래서 더 좋다

 

까만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볓빛 하나가 슬그머니 내려와 그의 얼굴을 비췄다. 어쩌면 별빛이 아닌, 높게 솟은 가로등 불빛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때, 나는 노란 가로등 불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는 그의 얼굴을 꼼꼼히 내 눈에 담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분 탓일까?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 한 켠에 어딘지 모르게 슬픈 기색이 있었다. 나는 차마 무서운 마음에 무슨 일인지 묻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사실…”

 

그가 평소답지 않게 뜸을 들인다. 쿵쿵쿵, 내 심장도 같이 불안해져 간다.

 

“5년 정도 외국에 나가야 할 것 같아, 이번에 해외 스카웃이 들어와서…”

 

축하해라는 말보다 섭섭함이 파도 치듯이 물밀려 왔다. 아니, 섭섭하다기 보다는 까마득함이 더 컸던 것 같다. 5년이라는 감히 와닿지도 않는 세월의 거리에- 나는 속상해 하지도 못했다. 나보다 그 사람이 더 힘들 테니까

 

“……”

 

흙 먼지가 섞인 강 바람이 서늘하게 불었다.

너무 세련되고 시원해서, 불어오는 타이밍이 미워지는 바람이었다.

 

“…..”

 

그리고 집에 가는 순간까지

나는 결국 축하해주지 못했다.

 

 

 

 

 

결론


 

톰포드 향수 중에서 되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섹시한 것 같다. 뭔가 '나 섹시하지!' 이런 기조를 벗어나서 존재 자체가 굉장히 세련되고 멋진 느낌이라고 할까? 섹시하기 위해서 옷을 더 벗는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잘 챙겨입어서 섹시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느낌의 베티버 향기다.

 

비슷한 향수로 딥디크 베티베리오가 생각나는데, 딥디크는 '자연적인' Nature의 느낌이 조금 강했다고 한다면,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는 확실히 '사람' 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한 것 같다. 워낙에 흙먼지가 얇게~ 휘몰아치는 듯한 분위기 있는 질감 덕분에, 남자향수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분들도 소화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슬랙스랑 셔츠를 입는 복장에는 충분히 어울릴 듯.

 

오랜만에 밸런스 탄탄하게 잡힌 남자향수를 포스팅해서 너무 즐거웠다.

 

 

 

 

 

톰포드 그레이 베티버 요약


[판매처/가격]

톰포드 매장 / 10 ~ 17만원

 

[연령대]

20대 중후반 ~ 무관

 

[성별, 남성적]

소탈하면서도 멋스러운

세상에 대한 걱정이 딱히 없는 것 같은(면서도 많은)

모던하고 세련된 섹시함

 

[계절]

, 가을, 겨울

 

[지속력]

★★★★(4.0/5.0)

 

[비슷한 느낌의 향수]

딥디크 베티베리오 + 톰포드 화이트 스웨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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